위만 - 위만조선을 세운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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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호 | 위만(衛滿) — 위만조선을 세운 왕 |
|---|---|
| 재위 기간 | 기원전 194년경~기원전 180년경(추정) |
| 이전 왕 | 준왕(기존 고조선 왕) |
| 다음 왕 | (2대, 이름 미상 — 흔히 '위만의 아들'로만 전함) |
배경
위만은 중국 연(燕)나라 출신으로, 한 고조 유방이 중국을 통일한 뒤 옛 연 지역에서 반란(노관의 난)이 일어나자 혼란을 피해 무리 1천여 명을 이끌고 고조선으로 망명했다. 당시 고조선의 왕이던 준왕은 위만을 신뢰해 서쪽 변경을 지키는 임무를 맡겼다.
전개
위만은 서쪽 변경에서 세력을 키운 뒤, 기원전 194년경 한나라 군대가 쳐들어온다고 준왕을 속여 왕검성으로 진군해 준왕을 몰아내고 스스로 왕이 됐다. 쫓겨난 준왕은 뱃길로 한반도 남부로 내려가 한(韓) 지역의 왕이 되었다고 전한다(『삼국지』 위서 동이전). 위만은 즉위 후에도 국호를 그대로 '조선'으로 유지했고, 상하 지배층에는 토착 고조선인과 연·제 지역에서 넘어온 유이민이 함께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철기 문화를 적극 수용하고 주변 진번·임둔 등을 복속시켜 세력을 확장했으며, 한반도 남부의 진(辰)이 한나라와 직접 교역하는 것을 막고 중계무역을 독점하며 국부를 쌓았다.
의의
위만의 즉위는 고조선의 지배 세력이 교체된 사건이지만, 국호를 그대로 '조선'으로 유지하고 토착 세력과 연합해 통치했다는 점에서 이민족에 의한 정복이라기보다는 고조선 사회 내부의 정치적 변동으로 보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 견해다. 위만조선 시기에 철기 문화가 본격적으로 확산되고 국가 체제가 한층 정비되면서, 뒤이은 우거왕 대에 한과 정면으로 맞설 만큼 강성한 국가로 성장하는 기반이 마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