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화기 - 강화도조약부터 대한제국 수립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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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기(開化期)는 조선이 오랜 쇄국 정책을 벗어나 서구 열강 및 일본에 문호를 개방하고 근대적 제도와 문물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시기로, 일반적으로 1876년 강화도조약 체결부터 1897년 대한제국 수립 전후까지를 가리킨다.
배경
19세기 중반 서구 열강의 통상 요구와 이양선 출몰이 잦아지는 가운데, 흥선대원군은 강력한 통상수교거부 정책(쇄국정책)으로 이에 맞섰다. 그러나 1873년 대원군이 물러나고 고종이 친정을 시작하면서 개항을 요구하는 대외적 압력에 대응할 새로운 노선이 모색됐다.
전개
1876년 일본과 강화도조약(조일수호조규)을 맺으며 조선은 최초로 근대적 조약 체제 아래 문호를 개방했다. 이는 치외법권을 인정하는 불평등조약이었으나, 이후 미국(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을 비롯해 영국·독일·러시아 등 서구 열강과도 잇달아 수교했다. 정부는 개화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통리기무아문을 설치하고 별기군(신식 군대)을 창설했으며, 일본과 청에 사절단(수신사·영선사·조사시찰단 등)을 파견해 근대 문물을 시찰했다. 그러나 급격한 개화 정책과 구식 군인 차별 대우에 대한 불만이 겹쳐 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났고, 이를 계기로 청의 내정 간섭이 심화됐다. 1884년에는 김옥균 등 급진 개화파가 갑신정변을 일으켜 근대적 개혁을 시도했으나 청군의 개입으로 '삼일천하'로 끝났다. 이후 1894년 동학농민운동을 계기로 청일전쟁이 발발했고, 일본의 주도로 갑오개혁이 단행되며 신분제 폐지 등 근대적 제도 개혁이 이루어졌다. 1895년 명성황후가 일본에 의해 시해된 을미사변이 발생했고, 신변에 위협을 느낀 고종은 1896년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는 아관파천을 단행했다.
의의
개화기는 조선이 전통적 동아시아 질서에서 벗어나 근대 국제 질서에 편입되는 과정이자, 자주적 근대화 시도와 열강의 이권 침탈이 동시에 진행된 격동의 시기였다. 이 시기의 정치적 혼란과 열강의 각축은 결국 1897년 고종이 황제로 즉위하며 자주독립국임을 대내외에 천명하는 대한제국 수립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