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 - 3·1운동부터 광복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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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獨立運動)은 1910년 국권 상실 전후부터 1945년 광복에 이르기까지, 국내외 각지에서 전개된 일제로부터의 국권 회복과 민족 독립을 위한 저항 활동을 총칭한다.
배경
을사늑약(1905)과 한일병합(1910)으로 국권을 빼앗기는 과정에서부터 이에 저항하는 의병 운동(을사의병·정미의병 등)이 전국 각지에서 일어났으며, 국권 상실 이후에는 국내에서의 활동이 어려워지자 만주·연해주·미주 등지로 망명해 독립운동 기지를 건설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졌다.
전개
1919년 3월 1일 전국 각지와 해외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3·1운동은 비폭력 만세 시위를 통해 독립 의지를 국내외에 알린 최대 규모의 민족운동이었다.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으로 유관순을 비롯한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으나, 이를 계기로 그해 4월 상하이에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며 독립운동의 구심점이 마련됐다. 만주에서는 무장 독립군의 활동이 활발히 전개돼, 1920년 홍범도가 이끈 봉오동 전투와 김좌진의 북로군정서가 주축이 된 청산리 전투에서 일본군에 크게 승리했다. 국내에서는 물산장려운동·민립대학설립운동 등 실력양성운동과 더불어, 광주학생항일운동(1929) 같은 학생 주도 저항이 이어졌다. 의열단(김원봉)과 한인애국단(김구)은 요인 암살·폭탄 투척 등 의열 투쟁을 전개했는데, 이봉창의 도쿄 의거와 윤봉길의 상하이 훙커우공원 의거(1932)가 대표적이다. 1930년대 후반 이후 임시정부는 충칭으로 근거지를 옮기며 1940년 한국광복군을 창설해 연합군과 공동 작전(인도·미얀마 전선 파견, 국내 진공 작전 준비)을 계획하기도 했다.
의의
35년에 걸친 독립운동은 무장투쟁, 외교 활동, 실력양성운동, 의열 투쟁 등 다양한 노선으로 전개됐으며, 국내외를 막론하고 전 민족적 저항이 끊이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하고 있어, 독립운동은 오늘날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정체성의 역사적 뿌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