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전과 정전 회담 - 백마고지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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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고지전과 정전 회담
시기1951년 7월(정전 회담 개시) ~ 1953년 7월
장소38선 부근 각 고지(백마고지, 저격능선, 철의 삼각지대 등)

배경

1951년 7월 개성에서 정전 회담이 시작됐으나(이후 판문점으로 장소 이전), 군사분계선 설정과 포로 송환 방식(자유의사에 의한 송환 vs. 강제 송환)을 둘러싼 이견으로 협상은 2년 가까이 지지부진하게 이어졌다.

전개

정전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전선에서는 유리한 협상 고지를 선점하려는 치열한 고지 쟁탈전이 계속됐다. 백마고지 전투(1952년 10월, 철원)에서는 국군 9사단이 열흘간 고지의 주인이 12차례나 바뀌는 격전 끝에 중공군을 격퇴했고, 이 밖에도 저격능선 전투, 단장의 능선 전투 등 이름 그대로 참혹한 소모전이 각지에서 벌어졌다. 이 시기 전선의 이동은 크지 않았지만 양측 모두 막대한 인명 피해를 입었다. 협상에서 가장 큰 쟁점이었던 포로 송환 문제는 결국 포로 개인의 자유의사에 따라 송환 여부를 선택하게 하는 방식으로 절충됐다.

의의

2년에 걸친 고지전은 전쟁 후반부의 인명 피해가 오히려 개전 초기 못지않게 컸음을 보여주는 시기로, '이길 수도 질 수도 없는 전쟁'이라는 6·25전쟁의 성격을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포로 송환 문제를 둘러싼 지루한 협상은 정전까지 전쟁을 장기화시킨 핵심 요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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