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 광복과 분단 정부 수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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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解放)은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하면서 한민족이 35년간의 일제 식민 통치에서 벗어난 사건과 그 직후의 시기를 가리킨다. 이날을 기려 대한민국은 8월 15일을 광복절로 지정해 국경일로 기념한다.

배경

1945년 8월 6일과 9일 미국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하고, 소련이 대일전에 참전해 만주와 한반도 북부로 진격하면서 일본의 항복은 급속히 임박했다. 8월 15일 일왕 히로히토가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는 방송(옥음방송)을 하면서 일제의 식민 통치는 막을 내렸다.

전개

해방 직후 여운형을 중심으로 조선건국준비위원회가 결성되어 치안 유지와 행정 공백 수습에 나섰으나, 한반도는 얼마 지나지 않아 38선을 경계로 미군과 소련군에 의해 분할 점령됐다. 1945년 12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3국 외상회의(모스크바 3상회의)는 한반도에 임시 민주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최대 5년간 신탁통치를 실시하기로 결정했는데, 이 소식이 국내에 전해지자 좌우익 세력이 신탁통치를 둘러싸고 극심하게 대립하는 이른바 '찬탁·반탁' 논쟁이 벌어졌다. 이후 미소공동위원회가 한반도 통일 정부 수립을 논의했으나 냉전이 심화되는 가운데 합의에 이르지 못했고, 결국 문제는 유엔으로 넘어갔다. 1948년 5월 유엔 감시 아래 남한 단독으로 총선거가 실시됐고, 그해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됐다. 북한에서도 그해 9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되며 한반도는 분단국가 체제로 굳어졌다.

의의

해방은 오랜 식민 통치를 끝내고 독립 국가를 재건할 기회였으나, 강대국의 이해관계와 국내 좌우 대립이 맞물리며 결국 통일 정부 수립에는 실패하고 남북 분단으로 귀결됐다. 이 시기 미완의 과제로 남은 통일 문제와 분단 구조는 이후 6·25전쟁으로 이어지는 비극의 직접적 배경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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