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평왕 - 53년의 재위와 성골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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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호진평왕(眞平王)
이름백정(白淨)
재위 기간579년~632년(53년)
이전 왕진지왕
다음 왕선덕여왕

배경

진평왕은 진흥왕의 태자였던 동륜의 아들로, 숙부 진지왕이 폐위되자 왕위에 올랐다. 53년이라는 신라 역사상 손꼽히는 긴 재위 기간을 기록했다.

전개

진평왕은 관제를 정비해 위화부·조부·예부 등 여러 중앙 관청을 신설하며 통치 체제를 한층 발전시켰다. 재위 내내 신라는 백제·고구려 양쪽으로부터 거센 압박을 받았는데, 이에 대응해 수·당에 여러 차례 사신을 보내 군사 지원을 요청하는 외교를 폈다. 아들 없이 딸만 두었는데, 이는 훗날 딸 덕만(선덕여왕)이 신라 최초의 여왕으로 즉위하는 배경이 됐다.

의의

진평왕의 오랜 재위 기간 동안 신라의 관료 체제가 한층 정교해졌으며, 고구려·백제의 압박 속에서도 국가를 안정적으로 유지했다. 그가 딸에게 왕위를 물려줄 수밖에 없었던 상황(성골 남성의 부재)은 신라 특유의 골품제, 특히 성골이라는 폐쇄적 신분 원칙이 왕위 계승에 미친 영향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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