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왕 - 미륵사 창건과 서동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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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호 | 무왕(武王) |
|---|---|
| 이름 | 장(璋) |
| 재위 기간 | 600년~641년(41년) |
| 이전 왕 | 법왕 |
| 다음 왕 | 의자왕 |
배경
무왕은 법왕의 아들로, 600년 부왕이 승하하자 왕위에 올랐다. 『삼국유사』에는 그가 신라 진평왕의 딸 선화공주와 결혼하기 위해 '서동요'라는 노래를 지어 퍼뜨렸다는 서동 설화가 전하는데, 다만 이 설화의 역사적 사실성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다(2009년 미륵사지 석탑에서 발견된 사리봉영기에는 왕비가 신라 공주가 아니라 백제 귀족 사택적덕의 딸로 기록돼 있어, 서동요 설화를 문자 그대로의 역사적 사실로 보기 어렵다는 견해가 유력해졌다).
전개
무왕은 41년의 긴 재위 동안 신라를 여러 차례 공격해 실지를 되찾으려 했으나 결정적 승리를 거두지는 못했다. 수·당과 외교 관계를 맺어 고구려를 견제하려 했다. 그의 최대 치적은 익산 지역에 대규모 왕흥사와 미륵사를 창건한 것으로, 특히 639년 완공된 미륵사지 석탑은 현존하는 한국 최고(最古)이자 최대 규모의 석탑이다. 익산으로의 천도를 시도했다는 설도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의의
무왕은 백제 후기 최전성기 중 하나를 이끌며 미륵사와 같은 대규모 불교 건축을 통해 백제 문화의 정수를 남긴 왕으로 평가된다. 서동요 설화는 역사적 사실 여부와 별개로 오늘날까지 한국인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삼국시대 설화 중 하나로 사랑받고 있다. 다만 신라에 대한 실지 회복에는 끝내 성공하지 못한 채, 그 과제는 아들 의자왕에게 넘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