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명왕 - 국내성 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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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호유리명왕(琉璃明王)
이름유리(類利)
재위 기간기원전 19년~서기 18년(37년)
이전 왕동명성왕
다음 왕대무신왕

배경

유리명왕은 동명성왕이 부여에 있을 때 낳은 아들로, 아버지가 남쪽으로 떠난 뒤 홀로 부여에서 성장하다가 아버지가 남긴 신표(부러진 칼 조각)를 찾아내 고구려로 찾아와 태자로 인정받고 왕위를 이었다고 전해진다.

전개

유리명왕은 즉위 3년(기원전 3년) 도읍을 졸본에서 국내성(오늘날 중국 지안)으로 옮겨 국가의 새로운 기반을 마련했다. 재위 기간 중 부여와의 갈등이 이어졌고, 선비족을 정벌하는 등 주변 세력과의 군사적 충돌을 겪었다. 아들 중 무휼(대무신왕)에게 왕위를 물려줬다. 그가 지었다는 「황조가」는 한국 문학사에서 가장 오래된 서정시로 꼽힌다.

의의

유리명왕의 국내성 천도는 고구려가 압록강 중류 지역을 중심으로 국가 기반을 다지는 중요한 계기가 됐으며, 국내성은 이후 장수왕의 평양 천도 전까지 400여 년간 고구려의 수도로 기능했다. 그의 치세는 고구려가 초기 부족연맹체 단계를 넘어 국가 체제를 갖춰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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