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성여왕 - 원종·애노의 난과 후삼국 분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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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호 | 진성여왕(眞聖女王) — 신라 마지막 여왕 |
|---|---|
| 재위 기간 | 887년~897년(10년) |
| 이전 왕 | 정강왕 |
| 다음 왕 | 효공왕 |
배경
진성여왕은 경문왕의 딸이자 헌강왕·정강왕의 여동생으로, 오빠 정강왕의 유언에 따라 왕위에 올랐다. 신라 역사상 선덕여왕·진덕여왕에 이은 세 번째이자 마지막 여왕이다.
전개
즉위 초에는 향가집 『삼대목』을 편찬하게 하는 등 문화적 성과도 있었으나, 재위 기간 내내 국가 재정이 극도로 악화됐다. 889년 지방에 조세 납부를 독촉하자 이에 반발한 원종과 애노가 사벌주(상주)에서 대규모 농민 봉기를 일으켰는데(원종·애노의 난), 이는 전국적인 농민 반란의 신호탄이 됐다. 이후 견훤이 완산주(전주)에서 후백제를, 궁예가 송악(개성)에서 후고구려(훗날 태봉)를 세우며 신라는 사실상 국토 대부분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했다. 진성여왕은 897년 조카 효공왕에게 양위하고 물러났다.
의의
진성여왕 대는 전국적 농민 봉기와 후삼국 분열이 시작된 신라 멸망의 결정적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다만 여왕 개인의 통치력 부족보다는 하대 내내 누적된 왕권 약화, 지방 통제력 상실, 극심한 조세 수탈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구조적 위기였다는 것이 오늘날 역사학계의 대체적 평가다. 그녀의 퇴위 이후 신라는 사실상 경주 인근으로 영역이 축소된 채 후삼국시대의 한 축으로 명맥만 유지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