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 - 계유정난과 비극적 폐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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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호 | 단종(端宗) |
|---|---|
| 이름 | 이홍위(李弘暐) |
| 재위 기간 | 1452년~1455년(3년) |
| 이전 왕 | 문종 |
| 다음 왕 | 세조 |
배경
단종은 문종의 외아들로, 어머니 현덕왕후는 그를 낳은 지 이틀 만에 세상을 떠났다. 1452년 문종이 재위 2년 만에 병사하자 12세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세종·문종 모두 일찍 세상을 떠나며 단종을 뒷받침할 만한 강력한 왕실 어른이 없었고, 이에 김종서·황보인 등 원로대신들이 실권을 쥔 채 국정을 이끄는 형태가 됐다.
전개
어린 왕을 대신해 대신들이 정국을 주도하는 상황에 불만을 품은 숙부 수양대군(훗날 세조)은 1453년 계유정난을 일으켜 김종서·황보인 등을 살해하고 정권을 장악했다. 이후 수양대군은 영의정부사 등 요직을 겸하며 사실상의 섭정으로 군림했고, 1455년 단종을 압박해 강제로 왕위를 넘겨받아 세조로 즉위했다. 상왕으로 물러난 단종은 1456년 성삼문·박팽년 등 사육신의 복위 시도가 발각되면서 노산군으로 강봉돼 강원도 영월로 유배됐고, 1457년 결국 사사(賜死)됐다.
의의
단종의 폐위와 죽음은 조선 초기 왕위 계승을 둘러싼 권력 다툼의 비극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이후 오랫동안 사림 사회에서 도덕적 논쟁의 대상이 됐다. 사육신·생육신으로 대표되는 절의(節義)의 신하들은 조선 유교 지식인 사회의 충절 규범으로 자리 잡았다. 단종은 사후 숙종 대인 1698년에야 명예가 회복돼 묘호 '단종'과 시호를 받았으며, 그의 유배지 영월 청령포와 무덤인 장릉은 오늘날까지 대표적인 역사 유적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