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 - 훈민정음 창제와 조선의 전성기
조회 4
| 묘호 | 세종(世宗) |
|---|---|
| 이름 | 이도(李祹) |
| 재위 기간 | 1418년~1450년(32년) |
| 이전 왕 | 태종 |
| 다음 왕 | 문종 |
배경
세종은 태종의 셋째 아들로, 원래 세자가 아니었다. 맏형 양녕대군이 세자였으나 자유분방한 행실로 폐세자되면서 학문을 좋아하고 성품이 신중했던 충녕대군이 1418년 세자로 책봉된 지 두 달 만에 태종의 양위로 왕위에 올랐다. 즉위 초에는 상왕으로 물러난 태종이 군사권을 쥐고 있어 실권은 제한적이었으나, 1422년 태종 사후 본격적으로 친정을 시작했다.
전개
세종 대는 조선 최고의 문화·과학 전성기로 꼽힌다. 1443년 독자적 표음문자인 훈민정음을 창제해 1446년 반포했으며, 이는 백성이 쉽게 글을 익혀 뜻을 전할 수 있도록 한다는 애민 정신에서 비롯됐다. 집현전을 확충해 학문 연구와 인재 양성의 중심으로 삼았고, 장영실 등을 등용해 측우기·자격루(물시계)·앙부일구(해시계)·혼천의 등 독자적 과학 기구를 다수 개발했다. 대외적으로는 4군(최윤덕)과 6진(김종서)을 개척해 압록강·두만강을 국경으로 확정했고, 이종무를 보내 왜구의 근거지인 대마도를 정벌했다. 박연을 시켜 아악을 정비하고, 농업 서적 『농사직설』, 의학서 『향약집성방』 등을 편찬하는 등 실용 학문도 장려했다. 다만 말년에는 건강이 크게 악화돼 국정 상당 부분을 세자(훗날 문종)가 대리했다.
의의
세종은 한국사에서 가장 존경받는 군주로 꼽히며, 그의 재위 기간은 흔히 '조선의 황금기'로 불린다. 훈민정음 창제는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한글의 기원으로 한국 문화사에서 가장 중요한 성취로 평가되고, 과학기술 진흥과 영토 확장은 조선의 국가적 기반을 크게 강화했다. 사후 그의 능호를 따 '세종대왕'으로 불리며, 대한민국에서는 그의 생일(음력 4월 10일 무렵)이 스승의 날 제정과 연관되고 한글날(10월 9일)로 훈민정음 반포를 기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