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조 - 세도정치의 시작과 홍경래의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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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호 | 순조(純祖) |
|---|---|
| 이름 | 이공(李玜) |
| 재위 기간 | 1800년~1834년(34년) |
| 이전 왕 | 정조 |
| 다음 왕 | 헌종 |
배경
순조는 정조의 둘째 아들로, 1800년 정조가 갑작스럽게 승하하자 11세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즉위 초에는 영조의 계비였던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하며 정국을 주도했다.
전개
정순왕후는 수렴청정 기간 동안 정조가 등용했던 남인·시파 세력을 대대적으로 숙청했고, 특히 1801년 신유박해로 천주교(서학)를 탄압하며 정약용 등이 유배됐다. 1804년 정순왕후가 물러나고 순조가 친정을 시작했으나, 왕비 순원왕후의 친정인 안동 김씨 가문이 국정을 장악하면서 조선 후기를 특징짓는 세도정치가 본격화됐다. 소수 외척 가문이 비변사 등 핵심 권력 기구를 독점하면서 매관매직과 삼정(전정·군정·환곡)의 문란이 극심해졌고, 지방관의 수탈에 시달린 백성들의 불만이 쌓여 1811년 홍경래의 난(평안도 농민 항쟁)이 일어났다. 또한 이 시기 잦은 자연재해와 콜레라 등 전염병까지 겹치며 민생이 크게 피폐해졌다.
의의
순조 대는 정조 사후 왕권이 급격히 약화되고 안동 김씨로 대표되는 세도 가문이 국정을 장악한 세도정치의 출발점으로, 이는 헌종·철종을 거치며 60여 년간 지속돼 조선 후기 국가 기강 해이와 민란 빈발의 근본 원인이 됐다. 홍경래의 난은 이후 이어지는 전국적 민란(임술농민봉기 등)의 선구적 사례로 평가된다. 순조는 세도정치를 견제하려는 시도(효명세자의 대리청정 등)를 하기도 했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세도정치의 폐해가 심화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