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 - 개항, 대한제국 선포와 국권 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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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황제(1897년 무렵 사진)
고종 — 대한제국 선포 무렵(1897년경)의 사진. 출처: 한국저작권위원회 공유마당, Wikimedia Commons(Public Domain)
묘호고종(高宗) — 1897년부터 대한제국 황제
이름이형(李㷩)/이희(李㷩)
재위 기간1863년~1907년(44년, 1897년부터 황제)
이전 왕철종
다음 왕순종

배경

고종은 흥선군 이하응(훗날 흥선대원군)의 둘째 아들이다. 1863년 철종이 후사 없이 승하하자 왕실 최고 어른인 신정왕후(조대비)의 후원으로 12세에 왕위에 올랐다. 나이가 어려 즉위 초 10년간은 생부 흥선대원군이 섭정하며 실권을 행사했다.

전개

흥선대원군은 세도정치를 종식시키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비변사를 폐지하고 경복궁을 중건했으며, 서양 세력의 통상 요구를 거부하는 강력한 통상수교거부(쇄국) 정책을 폈다(병인양요·신미양요). 1873년 고종이 친정을 선포하며 대원군이 물러났고, 왕비 명성황후(민씨) 척족이 정국의 중심에 섰다. 1876년 일본과 강화도조약을 맺으며 개항이 시작됐고, 이후 조선은 열강의 각축장이 됐다. 1882년 임오군란, 1884년 급진 개화파의 갑신정변, 1894년 동학농민운동과 이를 계기로 벌어진 청일전쟁 등 대내외적 격변이 연이어 발생했다. 1895년에는 일본이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을미사변이 일어났고,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은 1896년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는 아관파천을 단행했다. 1897년 경운궁(덕수궁)으로 환궁한 뒤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로 즉위해 자주독립국임을 대내외에 천명했으며, 광무개혁으로 근대화를 추진했다. 그러나 1904년 러일전쟁 이후 일본의 내정 간섭이 본격화됐고,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박탈당했다.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특사(이준·이상설·이위종)를 밀파해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리려 했으나 실패했고, 이를 빌미로 일본의 압박을 받아 강제로 퇴위됐다.

의의

고종은 조선의 마지막 실질적 통치자이자 대한제국을 선포해 자주독립 국가로서의 위상을 세우려 한 군주로, 개항과 근대화, 그리고 외세의 침탈에 맞선 저항이 교차하는 격동의 시대를 이끌었다. 광무개혁 등 근대 국가로의 전환 노력을 기울였지만 열강의 압력과 내부 개혁 역량의 한계로 결국 국권을 지켜내지 못했다. 그의 44년 재위는 조선 왕조가 근대 세계 질서에 편입되며 겪은 좌절과 시도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시기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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