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 - 반정으로 즉위, 조광조 개혁과 기묘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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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호중종(中宗)
이름이역(李懌)
재위 기간1506년~1544년(39년)
이전 왕연산군
다음 왕인종

배경

중종은 성종의 둘째 아들이자 연산군의 이복동생이다. 1506년 성희안·박원종·유순정 등 훈구 대신들이 연산군의 폭정에 반발해 일으킨 중종반정으로, 진성대군이던 그가 반정 세력에 의해 왕으로 추대됐다. 스스로 정변을 주도한 것이 아니라 신하들에 의해 옹립된 왕이었다는 점은 이후 그의 통치 내내 왕권의 취약성으로 작용했다.

전개

즉위 초에는 반정 공신들의 영향력에 눌려 있었으나, 이들이 물러난 뒤 조광조 등 사림파를 등용해 급진적 개혁(현량과 실시, 소격서 폐지, 위훈 삭제 등)을 추진했다. 그러나 급격한 개혁에 대한 훈구파의 반발로 1519년 기묘사화가 일어나 조광조 등이 처형·유배되며 개혁은 좌절됐다. 이후로도 정국은 불안정해 외척 간 권력 다툼이 이어졌고, 1521년 신사무옥, 1524년 김안로의 전횡 등 크고 작은 정치적 파란이 계속됐다. 재위 후반에는 세자(인종)의 외척 윤임(대윤)과 경원대군(명종)의 외척 윤원형(소윤) 간 대립 구도가 형성돼 훗날 을사사화의 불씨가 됐다.

의의

중종은 39년이라는 긴 재위 기간에도 반정으로 즉위한 태생적 한계 때문에 왕권을 안정적으로 행사하지 못하고 훈구·사림·외척 세력 사이에서 흔들린 왕으로 평가된다. 조광조의 개혁 시도(조선 성리학적 이상 정치의 대표 사례로 후대에 재평가됨)와 기묘사화는 이후 붕당정치가 형성되는 사상적 배경이 됐다. 재위 중 사림파의 정치적 재기와 좌절이 반복되면서, 다음 세대의 첨예한 외척 정치와 붕당 대립의 토양이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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