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이성계 - 조선 건국
조회 4
| 묘호 | 태조(太祖) |
|---|---|
| 이름 | 이성계(李成桂) → 즉위 후 이단(李旦) |
| 재위 기간 | 1392년~1398년(6년) |
| 이전 왕 | — (조선 건국) |
| 다음 왕 | 정종 |
배경
이성계는 고려 말 홍건적과 왜구 토벌로 명성을 얻은 무장이었다. 1388년 명나라 요동 정벌을 위해 출병했으나 위화도에서 회군해 우왕과 최영을 제거하고 실권을 장악했다(위화도 회군). 이후 전제개혁(과전법)을 단행해 신진 사대부 세력의 경제적 기반을 확보했고, 정몽주 등 온건 개혁파를 제거한 뒤 1392년 공양왕으로부터 왕위를 물려받는 형식으로 새 왕조를 열었다.
전개
즉위 직후 국호를 '조선'으로 정해 고조선의 정통성을 계승한다는 명분을 세웠고, 명나라의 승인을 받아 국제적 정당성도 확보했다. 1394년에는 개경에서 한양으로 천도해 경복궁을 비롯한 도성을 새로 건설했다. 정도전을 중심으로 통치 이념과 제도 정비를 맡겨 성리학에 기반한 중앙집권 체제의 틀을 마련했다. 그러나 후계 문제를 둘러싸고 갈등이 커져, 1398년 다섯째 아들 이방원이 주도한 1차 왕자의 난으로 세자였던 막내 방석이 살해되고 정도전도 제거됐다. 이 사건으로 큰 충격을 받은 태조는 둘째 아들 정종에게 왕위를 넘기고 상왕으로 물러났다.
의의
태조는 500년 넘게 이어진 조선 왕조의 창업주로서, 국호 제정·한양 천도·성리학적 통치 이념 채택 등 이후 조선사 전체의 골격을 세웠다. 다만 후계 구도를 안정적으로 정리하지 못해 왕자의 난이라는 유혈 사태를 남겼고, 이는 뒤이은 태종의 강력한 왕권 강화 정책의 배경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