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고려) -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서경천도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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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호인종(仁宗)
이름왕해(王楷)
재위 기간1122년~1146년(24년)
이전 왕예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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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인종은 예종의 맏아들로, 1122년 부왕이 승하하자 14세에 왕위에 올랐다. 외할아버지이자 장인인 이자겸이 외척으로서 강력한 권력을 쥐고 있었다.

전개

이자겸은 자신의 두 딸을 인종의 왕비로 들이며 권력을 독점했고, 척준경과 결탁해 국정을 좌우했다. 1126년 인종이 이자겸을 제거하려다 실패하면서 오히려 궁궐이 불타는 이자겸의 난이 벌어졌으나, 이후 인종이 척준경을 회유해 이자겸을 축출하는 데 성공했다. 1135년에는 승려 묘청이 풍수도참설을 내세워 서경(평양) 천도와 칭제건원(황제국 선포), 금국 정벌을 주장하며 서경천도운동을 일으켰으나 김부식이 이끄는 관군에 의해 진압됐다(묘청의 난). 이 사건은 훗날 신채호가 '조선 역사상 1천년래 제1대 사건'으로 평가하며 자주적 세력과 사대적 세력의 대결로 조명하기도 했다. 인종은 김부식에게 『삼국사기』 편찬을 명해 1145년 완성시켰다.

의의

인종 대는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이라는 고려 전기를 뒤흔든 두 대사건을 겪은 시기로, 문벌귀족 사회의 모순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 역사서인 『삼국사기』 편찬은 인종 대의 대표적인 문화적 성과로 꼽힌다. 이 시기의 정치적 갈등은 이후 의종 대 무신정변으로 이어지는 귀족 사회 붕괴의 전조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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