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왕건 - 고려 건국과 후삼국 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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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호 | 태조(太祖) |
|---|---|
| 이름 | 왕건(王建) |
| 재위 기간 | 918년~943년(25년) |
| 이전 왕 | — (고려 건국) |
| 다음 왕 | 혜종 |
배경
왕건은 송악(개성) 지역의 유력 호족 가문 출신으로, 처음에는 궁예가 세운 후고구려(태봉)의 장수로 활약하며 나주 등지를 공략해 큰 공을 세웠다. 궁예가 점차 폭정을 일삼고 신하들을 의심해 죽이자, 918년 홍유·배현경·신숭겸 등 측근들이 왕건을 왕으로 추대하며 궁예를 축출했다.
전개
즉위 후 국호를 '고려'로 정하고 연호를 천수라 했으며, 이듬해 송악으로 도읍을 옮겼다. 지방 호족들을 포섭하기 위해 각지의 유력 호족 딸들과 혼인하는 정책(29명의 부인을 둠)과 왕씨 성을 하사하는 사성 정책을 폈다. 935년 신라 경순왕이 스스로 나라를 바쳐 항복했고, 936년 신검의 후백제를 정벌해 마침내 후삼국을 통일했다. 통일 후에는 발해 유민을 받아들이고, 북진 정책을 펴 서경(평양)을 중시했다. 임종을 앞두고 후대 왕들이 지켜야 할 정치 지침인 훈요십조를 남겨 불교 숭상, 서경 중시, 거란 배척 등을 당부했다.
의의
태조 왕건은 후삼국의 혼란을 수습하고 새로운 통일 왕조 고려를 세운 창업주로, 호족 연합 정책을 통해 초기 왕조의 안정적 기반을 마련했다. 다만 다수의 혼인 정책으로 얻은 많은 왕자들은 훗날 왕위 계승을 둘러싼 골육상잔(왕규의 난 등)의 씨앗이 되기도 했다. 그의 북진 정책과 발해 유민 포용은 고려가 스스로를 고구려의 계승자로 인식하는 역사의식의 토대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