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왕 - 왜구 침입과 위화도 회군

조회 0

칭호우왕(禑王)
이름왕우(王禑)
재위 기간1374년~1388년(14년)
이전 왕공민왕
다음 왕창왕

배경

우왕은 공민왕과 후궁 반야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로 알려져 있으며(신돈의 아들이라는 설도 조선 건국 세력에 의해 제기됨), 1374년 공민왕이 시해되자 10세의 나이로 이인임 등 권신들의 지지를 받아 왕위에 올랐다.

전개

우왕 즉위 초에는 이인임을 비롯한 권문세족이 정권을 장악해 부정부패가 만연했다. 왜구의 침입이 극심했던 시기이기도 한데, 1380년 최영과 이성계가 각각 홍산대첩과 황산대첩에서 왜구를 크게 무찌르며 신흥 무장 세력으로 부상했다. 1388년 명이 원의 옛 쌍성총관부 지역(철령 이북)에 철령위를 설치하겠다고 통보하자, 최영은 요동 정벌을 주장하며 이성계에게 출병을 명했다. 그러나 이성계는 4대 불가론(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거스르는 것 등의 이유)을 내세워 반대했음에도 출정했다가, 위화도에서 군대를 돌려 개경으로 회군했다(위화도 회군). 이성계는 최영을 제거하고 우왕을 폐위시켜 강화도로 유배 보냈다.

의의

우왕 대는 왜구의 침입이 절정에 달하고 권문세족의 부패가 극에 이른 고려 말의 혼란상을 보여주는 시기다. 위화도 회군은 고려 멸망과 조선 건국으로 이어지는 결정적 사건으로, 이성계가 신흥 무인 세력의 정점에 서서 정권을 장악하는 전환점이 됐다. 우왕은 폐위 후 강릉으로 옮겨졌다가 1389년 아들 창왕과 함께 신돈의 자손이라는 이유로 서인으로 강등되고 살해됐다.

Archives Korea

사건·이슈를 타임라인으로 정리해 보여주는 웹진.

Columns & Boards

  • 등록된 게시판이 없습니다.
© 2026 Archives 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