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고려) - 유교 통치 체제 확립과 서희의 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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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호성종(成宗)
이름왕치(王治)
재위 기간981년~997년(16년)
이전 왕경종
다음 왕목종

배경

성종은 태조의 손자로, 사촌형 경종이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승하하자 왕위를 이어받았다. 유교적 소양이 깊어 즉위 직후부터 유교 이념에 입각한 통치 체제 정비에 힘썼다.

전개

즉위 이듬해인 982년 최승로가 올린 시무28조를 받아들여 불교의 폐단을 지적하고 유교적 정치 이념에 기반한 국가 운영 방향을 채택했다. 중앙 관제를 2성 6부제로 정비하고 지방에 12목을 설치해 지방관을 파견하는 등 중앙집권 체제를 크게 강화했다. 국자감을 정비해 유학 교육을 진흥했으며, 993년 거란(요)이 대규모로 침입하자(거란 1차 침입) 서희가 소손녕과의 담판을 통해 오히려 강동 6주를 확보하는 외교적 성과를 거뒀다.

의의

성종은 고려의 국가 체제를 유교적 중앙집권 관료제로 완비한 왕으로, 최승로의 시무28조 채택과 2성 6부·12목 설치는 이후 고려 통치 체제의 근간이 됐다. 서희의 외교 담판으로 확보한 강동 6주는 고려의 서북 국경을 압록강까지 확장시킨 중요한 성과로 오늘날까지 대표적인 실리 외교 사례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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